고흐 를 만나다

 

고흐(호흐)를 만나다
06/13/2014 13:45
 
 비엔나에서 잠시 본 고흐를 암스텔담에서 또 만났다. 진짜로.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덧치는 “빈쎈트 판 호흐”로 발음한다)는
네델랜드의 크롯-준더트(Groot-Zundert)에서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5명의 아버지 형제 가운데 3명이 미술상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호흐가 제일 사랑한 동생 테오(Theo)도 미술상이 되었고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전 호흐도 약관 20세의 나이로
미술상(Goupil & Cie., 구필社)의 직원으로 1873년에 런던(London)과

빠리(Paris)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같은 이름을 가졌던 큰 아버지 “쎈트 아저씨”(Uncle Cent, 편지에서 호흐와 테오는

그를 그렇게 불렀다)는 당시 상당히 중요한 미술상 아돌프 구필(Adolph Goupiel)과

구필社(Goupiel & Cie.)의 동업자였고 헤이그 지사를 책임맡고 있었다.

쎈트 아저씨 덕분에 둘이 다 여기서 근무를 했다.

 

그런데도 호흐는 죽기 전까지 평생 단 1점의 그림을 팔았다.

그것도 단돈 400프랑에.(1890년 브러쎌, 벨지움)

그 그림은 지금 모스크바의 뿌쉬킨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호흐는 1881년 11월 부터 세상을 떠나던 1890년 7월까지 약 900점의 유화를 그렸다.
그의 그림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당시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의 그림이 시대를 너무 앞서 갔던 때문이었을까?

 

판 호흐의 모든것(유화 200여점, 연필화 437점, 편지 902통, 일본 목판화 474점 등등…)을
제일 많이 소장하고 있는 판 호흐 미술관(Van Gogh Museum)이 암스텔담에 있다.

그를 만나러 호텔 판 호흐에 첵인을 하자마자 달려갔다.
2분 걸린다. 호텔에서.

 

호흐의 이름이 호텔 이름이니

  호텔의 침실 벽이나 

 

호텔의 라비와 식당에도

호흐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판 호흐 미술관, 암스텔담(Van Gogh Museum, Amsterdam)

미술관의 홈페이지: http://www.vangoghmuseum.nl/vgm/index.jsp?lang=nl
미술관의 주소: Paulus Potterstraat7, 1071 CX Amsterdam
 

     비행장이나 기차역 또는 시내의 방문자 안내소에서“아이 암스텔담”(I amsterdam)이란 카드를 구매하여 다니면시내교통편이 무료이고 호흐미술관의 긴 기다리는 줄을 피할 수가 있다. 줄을 따로 서고 우선권이 있다.  판 호흐의 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하여소장하고 있는 모든 작품들을 그림의 주제별로혹은 연대별로 감상할 수가 있고미술관의 전시실도 그렇게 전시되어 있다.  

 

 

호흐의 연대기와 함께 생전에 호흐가

살았던 곳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Hello, Genius! Good to see you again!

 

 

 

호흐는 자화상을 많이 그린 것으로도 유명한데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이 8점 이다.

판 호흐 미술관은 그가 모두 39점의 자화상을 그렸다고 한다.

 

 

 

 

 

 

 

얼마 전 알콩달콩님이 가셨을때는 해바라기가

유리관 신세였다고 하는데 이번엔 이 그림이

유리관 신세를 지고 있었다.

고갱이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호흐를 그린 그림이다.(1888)

미술관의 설명에 의하면 고갱이 실제로

해바라기를 그리는 호흐를 보며 그린 그림이 아니고

고갱의 상상화라고 한다. New to me & Interesting!

 

 

 

 
 


 

 

 

 

 

 

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902 통의 편지 가운데

제일 중요한 편지는 아래의 7월 23일(1890년)에 쓴

미완성의 것으로 호흐가 자살을 시도했을때 입고 있었던

상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흔히들 이것이 그의 “자살노트”라고 하는데

호흐의 전문연구가들은 테오에게 부친 7월 23일字 편지(No.902)의

초안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총상으로 인한 피자국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My dear brother,
Thanks for your kind letter and for the 50-franc note it contained.
I’d really like to write to you about many things, but I sense the pointlessness of it.
I hope that you’ll have found those gentlemen favourably disposed towards you.
You didn’t need to reassure me as to the state of peace of your household. I believe I’ve seen the good
as much as the other side. And besides, am so much in agreement that raising a kid in a fourth floor apartment
is hard labour, as much for you as for Jo. Since that’s going well, which is the main thing, should I go on about things of lesser importance? My word, there’s probably a long way to go before there’s a chance of talking business with more rested minds. That’s the only thing I can say at the moment, and that for my part I realized it with a certain horror, I haven’t yet hidden it, but that really is all.
The other painters, whatever they think about it, instinctively keep their distance from discussions on current trade. Ah well, really we can only make our paintings speak.
But however, my dear brother, there’s this that I’ve always told you, and I tell you again once more with all the gravity that can be imparted by the efforts of thought assiduously fixed on trying to do as well as one can – I tell you again that I’ll always consider that you’re something other than a simple dealer in Corots, that through my intermediacy you have your part in the very production of certain canvases, which even in calamity retain their calm. For that’s where we are, and that’s all, or at least the main thing I can have to tell you in a moment of relative crisis. In a moment when things are very tense between dealers in paintings – by dead artists – and living artists.
Ah well, I risk my life for my own work and my reason has half foundered in it – very well –but you’re not one of the dealers in men; as far as I know and can judge I think you really act with humanity, but what can you do?
 
 
호흐 편지의 서명 빈쎈트(Vincent),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호흐 그림의 서명 빈쎈트(Vincent),
자기의 성(姓)씨를 호흐로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한다고
빈쎈트라고 서명을 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의 모든 서신문이 미술관 홈페이지로 열람이 가능하다.

원문과 영어 번역문이 같이 있다. (http://www.vangoghmuseum.nl/vgm/index.jsp?lang=nl)

 

첫번째 사진 왼쪽 아래편에 보이는 책 “Van Gogh: The Life”를 읽어보면

호흐는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라는 이론을 논리정연하게 전개하고 있다.

계획된 살인이 아니고 빠리에서 온 젊은 형제들에 의한 우발사고의 결과이라고.

 

 

 

 

 

아래의 책들은 호흐의 전문가 3명이 15년간의 준비를 거쳐

2009년 말에 출간한 호흐의 모든 것으로 6권(셋)이

2500쪽이 넘는 방대한 자료이고 가격은 325 유로였다.

 

그런데 현재 아마죤에서 새것을 $706.33(송료 별도)에 판매하고 있다.

오히려 중고책이 $800 이상으로 나와있어 이상스럽다.

Vincent van Gogh: The Letters: The Complete Illustrated and Annotated Edition (Vol. 1-6)

Publisher: Thames & Hudson; Ant Ill edition (November 16, 2009)

 

 

현지의 덧치들이 발음하는 것을 자세히 들어보자.

호흐의 그림을 설명하시는 분은

이 미술관의 관장님이신 악슬 뤼거(Dr. Axel Ru”ger)다.

 
 
 
마침 위의 비디오에서 발견을 하여 스크린 켑춰를 했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그림은 아래와 같이
그림 옆에 싸인이 있다.
보통은 호흐 미술관의 소장품이 아니고
다른 미술관이나 기관의 소장품일 경우이다.
 
 
월드컵 경기에서 네덜랜드가 스페인을 무려 5-1로 무찔렀다.
2010년 결승전에서 패배한 것을 씨원하게 갚았다.
예전에 요한 크로이프가 있을때의 더치 축구가 다시 살아나는지
암스텔담이 온통 오랜지 색일것 같다. 호흐가 축구를 알았을까? I wonder.

 

Content Courtesy  :     From socal with love   

좋은글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