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al Diplomacy: 뉴욕필 로린마젤 ” 아리랑 ”

Musical Diplomacy: A Concert in North Korea

http://www.npr.org/templates/story/story.php?storyId=87987687

 

평양 아리랑 컨서트후 한인 타운을 방문하신 뉴욕필 뮤직 디랙터  로린마젤께선

진정 평화를 음악만큼이나  사랑 하셨 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Gala Night 2008  을 그려보며… .

KBS, 중앙일보, 한국일보 후원,

PRESENTED BY JOYCE KIM

THE GALA

“TO PEACE”

 

참조 :  티파니 김  10   

 우리모두는  평화를사랑 합니다.   

 

 

로린마젤

로린마젤

140. tk

148. tk 3

 

로린마젤   기사참조….

 

평양시민 울린 아리랑 이젠 천국서 울려퍼지길…거장 로린 마젤 타계
2014-07-14 17:13:56

 

“아리랑을 연주했을 때 북한 청중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기 시작했어요. 따뜻하고 적극적인 관객들이었죠. 다시 평양에 돌아와 음악회를 열겠다는 제안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2008년 평양에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회를 지휘한 거장 로린 마젤은 이제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 200여 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세계 음악계를 이끈 그가 1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그가 버지니아주 북부에 있는 캐슬턴 농장 자택에서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캐슬턴 페스티벌 주최 측이 발표했다. 이 축제는 2009년 마젤이 그의 아내 디에트린테 투르반 마젤과 함께 젊은 음악가들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했다. 마젤은 임종 무렵에도 이 페스티벌에 전념했다. 6월 28일 밤 개막식에서 “젊은 예술인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사랑의 노역보다 더한 기쁨의 노역”이라고 밝혔다. 첼리스트 장한나가 이곳에서 그의 레슨을 받은 후 지휘자의 길로 들어섰다. 마젤은 “한나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지휘 재능을 갖고 있다”며 그의 지휘 입문을 격려했다. 마젤은 지난 3월 캐슬턴 농장에서 북한 인권과 자유를 기원하는 음악회 `침묵을 깨야 할 시간`을 열기도 했다. `평화의 음악 전령사`였던 마젤은 이 시대 최고 지휘자였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2002~2009년),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수석 지휘자(1992~2002년), 미국 피츠버그 교향악단 수석 지휘자(1986~1996년), 오스트리아 빈 국립 오페라극장 음악감독(1982~1984년)을 역임했으며 2012년부터 독일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았다. 1930년 러시아 혈통 유대인으로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 미국으로 이주한 음악 신동이었다. 7세에 거장 아르투르 토스카니니의 전폭적 지원 아래 NBC심포니를 지휘했다. 5년 후에는 뉴욕필을 지휘했다. 15세에 이미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 대부분을 지휘했으며 16세에 피츠버그대학에 입학해 어학과 수학, 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태어난다면 내 또래 아이들과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신동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7개 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한 번 본 악보를 정확하게 외우는 `카메라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2년 전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말러 교향곡 10곡 대부분을 외우는 것은 사실이지만 완벽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암보가 중요하지만 음악을 만드는 필수 요건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의 타계 소식에 세계 음악계의 애도 물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는 “마젤의 재능과 음악, 우리가 함께 했던 공연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영광스러운 음악 시대를 이끈 당신을 영원히 그리워할 것”이라며 페이스북에 추모 글을 남겼다.

 

마젤과 공연했던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은 “열정과 카리스마가 넘쳤던 분이었다. 음악뿐만 아니라 인품도 따뜻했다”고 말했다. 마젤의 발탁으로 오는 12월 뮌헨 필과 협연하는 피아니스트 윤홍천은 “위대한 지휘자이자 영감을 주는 음악가”라고 그를 기억했다. [전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어려서부터 지휘 신동으로 불리던 로린 마젤은 클래식 음악계의 우뚝 선 별이었다. 그는 2008년 평양에서 공연한 것을 비롯해 올해 3월 열린 자선공연에 탈북 여성을 초청하는 등 음악을 통한 평화의 조율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뉴시스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인 지휘자 로린 마젤이 타계했다. 향년 84세. 고인이 2009년 만든 음악축제인 ‘캐슬턴 페스티벌’은 14일 마젤의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마젤이 미국 버지니아 주 캐슬턴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폐렴에 따른 합병증으로 13일(현지 시간) 사망했다고 밝혔다. 마젤은 올해 행사를 위해 최근까지 리허설을 하는 등 행사 준비를 해왔다. 1930년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태어난 마젤은 어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성악을 전공한 아버지와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할아버지를 둔 그는 집안의 음악적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신동이었다. 5세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 8세 때 아이다호대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지휘했다. 서른 살이 된 1960년에는 미국인으로선 처음으로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지휘자로 무대에 섰다. 뉴욕필하모닉, 뮌헨필하모닉,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이끈 그는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말러 등의 작품을 포함해 300개가 넘는 음반을 녹음했다. 한국도 수차례 방문해 공연을 열었다. 마젤은 늘 악보를 통째로 외운 채 지휘대에 섰다. 그는 “연극배우가 대본을 손에 들고 연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작곡가로도 활동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들었고,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를 재해석한 ‘대사 없는 반지’를 작곡했다. 마젤은 재능 있는 음악인을 발굴해 교육하는 데도 많은 열정을 쏟았다. 청소년 음악 교육을 위해 ‘샤토빌 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나이 든 음악가로서 ‘횃불을 들고’ 음악 예술을 이끌어 나갈 젊은 예술가를 육성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인 장한나의 스승이기도 하다. 지휘자로서 장한나의 재능을 확인한 그는 캐슬턴 페스티벌을 비롯해 여러 공연에 장한나를 초청해 지도했다. 장한나는 한 인터뷰에서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를 자유자재로 쓰시는 마젤 선생님은 세대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젊고 열정적이셨다”고 말했다.

마젤은 2008년 평양에서 뉴욕필하모닉 공연을 열어 또다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앨런 길버트 뉴욕필하모닉 음악감독은 “마젤은 수십 년 동안 (클래식) 음악계의 중심이었고 미국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고 애도했다. 뉴욕필하모닉 측은 14일(현지 시간)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고인에게 헌정하는 무료 콘서트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뉴욕=부형권 특파원